글쓰기는 내가 그나마 대학에서 배웠다고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이다. 꼭 그래서는 아닌 것 같지만, 아무튼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고 글 읽기에 취미를 붙이려고 애쓰고 있다.


근데 글쓰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글쓰기 자체도 어렵거니와 글쓰기는 생각과 지식을 글로써 전달하는 것이기에 어떤 생각과 어떤 지식을 갖고 있느냐가 대단히 중요하다. 적어도 나에게는 중요한 부분이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글은 무언가에 대해 잘 알고 있거나, 잘 아는 척을 하는 글이기 때문에 나도 무언가 잘 아는 것을 잘 썼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건 글쓰기를 업으로 삼으려는 모든 사람의 소망이리라 생각한다.


문제는 내가 가진 생각과 지식이 얄팍하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막상 시도하면 좋아할 만한 것이 나오기 힘들다는 것을, 나 같은 범재들은 공감하실 것이다. 그건 굉장한 내공과 노력이 뒷받침된 것인 것을 그제서야 알게 되는 것이다. 결국 아는 만큼, 가진 만큼만 쓰려니 글이 너무 볼품없고, 볼품 좋은 글을 쓰려니 아는 것 이상으로 쓰게 되고... 딱 아는 만큼만 쓰고 아는 만큼만 말한다면 좋을 텐데 오히려 아는 만큼 쓰는 것보다 아는 것 이상으로 쓰는 게 더 쉽다. 잘 알아서가 아니라, 허세 때문에. 그 이면에 붙어있는 열등감 때문에.


어느 영화감독이 그랬듯이, 처음부터 명작을 만드는 대가는 없으며 부단한 습작을 통해 명작을 만드는 수밖에는 없는 거겠지. 그럼에도 나의 지금 글들이 너무나도 얄팍해서 미칠 것 같은 때가 종종 있다. 그런데 이런 고민은 죽을 만큼 노력이나 하고서의 고민일 텐데.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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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arlonPa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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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 중 하나는 불법 다운로드입니다. 저작권으로 보호받는 저작물을 정당한 대가 없이 즐기는 그것 말입니다. 저 역시 한 때는 당나귀, 프루나, 토렌트, 각종 웹하드를 많이 이용했었기 때문에 감히 뭐라 할 주제는 못 됩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반드시 다루고 싶었던 주제이기에, 감히 적어보겠습니다.


저는 불법 다운로드가 도둑질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도둑질이라는 단어가 불쾌하실 분들도 있겠죠. 하지만 그건 그냥 도둑질일 뿐입니다. 우리는 설렁탕집에서 점심을 먹은 뒤에 계산 없이 나오는 법이 없습니다. 당신이 뉴스에 가끔 나오는 먹튀꾼이 아니라면 말이죠. 그건 설렁탕 한 그릇을 즐겼으면 그에 마땅한 값을 지불해야 한다는 상식적인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그 값을 안 냈다가는 경찰서에 가게 되고, 덤으로 뉴스에도 나올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음악, 소설, 영화, 소프트웨어 등등 우리가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쉽게 훔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그렇지가 않은가 봅니다. 그것들을 돈 내고 즐기기엔 나의 돈이 아깝다고 생각하거나, 그것을 훔쳐봤자 경찰서나 뉴스에 소환될 가능성은 설렁탕 먹튀보다는 한참 낮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대단히 나쁘고 말이 안 되는 생각입니다. 앞의 생각이든 뒤의 생각이든 다 그렇습니다. 설렁탕을 먹고 즐기는 데에 쓰는 돈은 아깝지 않으면서 저작물을 이용하고 즐기는 데에 쓰는 돈은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제발 돈 들일 가치도 없는 그것들에 소비되는 시간도 아까워할 줄 알았음 좋겠습니다. 또 잡혀갈 걱정이 없으니 훔쳐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주인이 자리를 비워 적발 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설렁탕 집에 들어가서 마음껏 설렁탕을 퍼먹고 나올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고 싶습니다. 시간 아까운 줄 알고, 스스로에게 양심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왜 그토록 저작물에 대해서는 무딘 태도를 갖는지 모르겠습니다. 무딘 태도라니, 말 참 곱게 한 것 같습니다.


창작자가 지속적인 창작활동을 하려면 결국에는 자신의 창작물로 먹고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왜 작가 지망생에게 굶어 죽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냅니까? 자신이 창작한 글을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팔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수준 높은 글을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글로 어느 정도 먹고 살 정도는 되는 글쟁이들입니다. 다 그렇습니다. 음악, 소설, 영화, 소프트웨어 등등 모든 창작물은 창작자에게 어느정도의 영리가 보장되지 않으면 결코 지속가능할 수가 없습니다. 설렁탕집이 설렁탕을 못 팔면 설렁탕집일 수 없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습니다.


물론 '합리적인' 소비자인 우리가 맛 없는 설렁탕집을 먹여살릴 의무는 전혀 없듯이, 질 낮은 저작물만드는 창작자에게 이익을 보장할 이유 또한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맛집의 설렁탕은 누구라도 돈을 내고 먹어야 하는 게 상식인 반면, 잘 만든 저작물은 돈을 안 내고 이용해도 괜찮다는 몰상식이 상식처럼 여겨지는 분위기엔 정말이지 치가 떨립니다. 그것을 너무너무 이용하고는 싶은데, 그만큼의 금전적 여유는 없으니 어떡하느냐 하는 성토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느 집 설렁탕이 너무너무 먹고 싶은데 돈이 없으니 먹고 튀겠다라는 생각이 용납될 수 없다는 걸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것을 향유할 만한 돈이 없으면 그냥 즐기지 않으면 되는 겁니다. 아니, 즐길 수 없는 겁니다. 설렁탕은 의식주에 들어갈 만큼 생활에 필수적인 영역에 있는 거고, 대개의 저작물은 필수적인 영역에서 순위가 설렁탕에 비해 낮은 만큼 아무래도 지출의 우선순위가 설렁탕보다는 낮지 않겠느냐는, 그래서 설렁탕은 기꺼이 돈을 낼 수 있지만 때에 따라서는 저작물에 돈을 낼 수 없다는 주장 또한 용납될 수 없습니다. 돈은 부족한데 밥은 먹어야겠는 사람은, 설렁탕보다 싼 걸 먹을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무언가를 즐기고는 싶은데 돈이 없는 사람은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더 적은 비용으로 즐길 궁리를 해야 하는 겁니다.


너무 부정적인 이야기만 한 것 같으니까, 긍정적인 부분도 말씀드리겠습니다. 돈 내고 먹는 밥보다 공짜밥이 더 맛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돈 내고 즐기는 저작물은 돈 안 내고 즐기는 그것에 비해 다가오는 바가 확연히 다릅니다. 본전을 뽑아야 하니 더 꼼꼼히 즐기고 꼼꼼히 살피게 됩니다. 그리고 만약 내가 돈을 내고 선택한 저작물이 만족스럽다면, 다음에 또 돈을 내고 즐기고 싶어집니다. 결국 다시 돈을 내고 어떤 저작물을 소비할 것이고, 이것은 선순환으로 이어집니다. 적어도 저의 경우엔 그랬습니다.


저도 한 때는 생각없이 불법 다운로드를 자행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각성을 한 후부터는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만 즐기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예술가는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통념은 정말이지 거지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술가도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잘 먹고 잘 입고 싶은 욕망이 없을 리 없습니다. 사람 사는 것, 사람 바라는 건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맛있는 설렁탕집 주인이 설렁탕 그릇그릇마다 이익을 보는 게 당연하다 생각하신다면, 잘 만든 저작물 하나하나로 저작권자가 이익을 보는 것도 당연하게 생각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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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arlonPa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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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섯

나의 글/짧은 글 2015. 4. 18. 14:30

스물여섯 살이 되었다. 오늘이 사월 십팔일이니까 백 일도 전의 이야기다. 대학에 갓 입학할 때의 나는, 내가 스물여섯 살이 되면 결혼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스무 살에게 스물여섯이란 육 년 후의 일이고, 이십 대가 꺾이는 지점이니 한참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결혼이라는 큰 일 역시도 그때에는 맡을 수 있겠거니 했겠지.


그 한참 먼 미래에 막상 와보니, 나는 그때 생각했던 것만큼 현명하거나 책임감이 있거나 바랬던 만큼의 능력도 딱히는 없는 것 같다. 당연히 미혼 상태다. 무엇보다 내가 스물여섯 살에 군인일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상황이 딱히 애석한 것은 아니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 살았던 건 아니지만 삶이 나에게 바라는 대로, 내가 삶에게 바라는 대로 내 나름의 일들을 해왔고 스무 살의 나로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스물여섯 살이 되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더 열심히 살았으면 좋았을걸 하는 후회는 있지만, '늦었다고 생각됐을 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격언이 뭘 말하고 싶어하는지도 알 것 같긴 하다. 난 그래서 지금의 나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다. 스무 살의 내가 스물여섯 살의 나에게 기대했던 것과는 달라진 것도 있고 그때와 여전한 것도 있지만, 그것들이 바람직한 바람이길 바랄 뿐이다.


이제는 서른두 살의 나에게 갖는 기대들이 있다. 그때에는 아빠가 되었으면 좋겠다(군대로 인해 나의 결혼 희망 연령은 이 년 늦추어진 스물여덟 살이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과, 그분을 알리는 것과, 글을 잘 쓰는 것과, 영화를 잘 이해하는 것과, 악기를 잘 다루는 것과, 영어와 일본어에 능통하는 것과, 무엇보다 좋은 남편이고 좋은 아빠가 되는 것에 나의 길이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당장은 생각이 안 나 적지 못한 다른 바람들도 더 있을 것이다.


술, 담배, 클럽, 친구들, 여자, 게임, 여행, 취직 등등 나의 또래들이 일반적으로 그들의 삶에 수놓는 것들과는 담 쌓고 살았지만 정말 재밌게 살았던 스물여섯 해였다. 오히려 그런 것들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과는 다른 오락과 다른 생각을 누릴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 서른두 살에 나는 어떤 감상으로 지난 날을 돌아볼까. 얼른 서른두 살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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