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의식다운 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한 이후로, 언제나 나의 관심을 끌었던 주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똥이다. 먹어야 사는 거의 모든 존재가 몸의 어딘가로는 반드시 내보내야 하는 그것 말이다. 여기서 거의 모든 존재라고 쓴 이유는, 아직 배변을 하지 않는 동물이 확실히 없다는 자료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리 말씀드리지만, 앞으로 이어질 내용은 읽으시는 분들의 심기를 다소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으니 주의를 요한다. 아예 읽지 않으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군대에서 한동안 화장실 청소, 그중에서도 변기 청소를 전담했던 나는 언제나 가능한 한 변기를 꼼꼼히 닦으려 했다. 군대나 학교와 같이 시설 관리를 해당 구성원들이 담당하는 경우에는 그다지 화장실 청소를 성실하게 하지 않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그것은 대체로 복불복이거나 징계성이기 때문에. 그래서 보통 변기 청소를 할 때에는 변기 커버에서 배변자의 엉덩이가 닿는 부분과 우리가 똥을 내버릴 수 있는 움푹 파인 그릇(?) 부분만을 휴지와 솔로 슥삭슥삭 닦아내는 사람이 많다. 즉 보이는 부분만 깨끗하게 하려는 심산인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고개를 숙인다면, 그곳에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의 똥이 튀어져 있다. 언젠가 위기탈출 넘버원에서도 방송한 것이지만, 일을 보고난 후 물을 내릴 때에 변기 뚜껑을 덮는 것과 덮지 않는 것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한다. 건강한 사람이 내보내는 똥의 질량과 크기는 엄청나기 때문에 그만큼 강한 수압이 요구되고, 똥을 흘려보낼 때 발생하는 물보라는 생각보다 훨씬 멀리, 많이 사방팔방으로 튀어나간다. 그래서 변기 뚜껑을 덮지 않고 물을 내리게 되면 그것이 칫솔이며 컵이며 온갖 곳에 날아가게 되고, 기껏 내보낸 그것들은 다시 우리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는 것이다. 변기와 멀찍이 있는 칫솔에도 그 똥국물이 튀는 마당에, 하물며 변기 자체는 어떠하겠는가. 청소할 때에 놓치기 쉬운 변기 커버의 아랫 부분과 그 커버를 받치는 윗 테두리 등에는 정말 많은 흔적들이 남아있다. 나는 그런 부분들이 방치되는 것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그 부분을 특히 더 신경써서, 똥국물이 튄 자국 하나하나 세세히 지워나갔다. 그러면서 '우리의 엉덩이에도 적지 않은 똥국물이 튀고 있겠군'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확실히 묵직한 그것은 떨어지면서 첨벙, 많은 물방울을 만들지 않나.
고등학생 때였나 하루는 급식으로 카레가 나왔었다. 그때 나와 같이 밥을 먹은 한 친구는 비위가 약했었는데, 밥 먹는 데 똥 얘기를 하는 걸 정말 못 견뎌하는 친구였다. 짓궂은 마음이 들은 나는 카레가 나오자 사정없이 똥 얘기를 해댔고, '똥 먹는 데 카레 얘기하지 마라'는 말로 쐐기를 박았다. 짱구는 못말려에 나오는 대사였다. 결국 그 친구는 반도 안 먹은 밥을 버렸고, 그 일로 미안해진 나는 다시는 그 친구 앞에서 똥 먹는 데 카레... 아니, 밥 먹는 데 똥 얘기를 하지 않았다. 된장국이 나온 어느날 속으로 키득 거리기만 하며 똥 얘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스스로를 대견히 여기면서. 하지만 그 이후로도 여전히, 지금까지도 나는 똥 얘기가 좋다.
아마 나는 똥 그 자체보다도 쾌변이 주는 흐뭇함을 좋아하는 것 같다. 또 그 누구도 똥을 싸지 않고는 못 살며, 아무리 이쁘게 장식한 음식이라도 그것이 두 번째 구멍을 통해 세상을 볼 때에는 개밥처럼 생긴 밥을 먹었을 때와 동일한 모양으로 나온다는 공평함 때문에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이쁜 여자라도 못생긴 여자보다 더 아름다운 똥을 만들어낼 재간은 없다. 죽음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존재의 잠정적인 마지막 단계라는 점에서 인간을 하나로 묶어준다. 그 앞에서 우리를 평등하게 만든다.
지금도 전 세계의 수십억을 헤아리는 우리 인간들은 똥을 싸고 있다. 언젠가 중국인들이 동시에 백두산 천지에 오줌을 누면 그것이 흘러넘쳐 홍수를 이룰 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굳이 중국인들까지 갈 것 있나 싶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의 힘만으로도 그러한 과업은 이뤄낼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그보다 더 거대한 집단인 인류가 매일 싸대는 그 똥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고작해야 개똥이나 새똥만 군데군데 나뒹구는 이 신비로움이란. 역시 대지는 우리의 똥들을 받아들이고도 남을 만한 도량을 갖고 있구나.
난데없는 똥 얘기에 당황하거나 불쾌해 하실 분들에게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다음에는 더 진지하거나 더 재밌는 똥글(말 그대로 똥에 대한 글)로 인사드리고 싶다. 똥 얘기는 더이상은 naver를 외치실 분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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