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이야기

나의 글/긴 글 2015. 5. 31. 16:52

나에게 의식다운 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한 이후로, 언제나 나의 관심을 끌었던 주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똥이다. 먹어야 사는 거의 모든 존재가 몸의 어딘가로는 반드시 내보내야 하는 그것 말이다. 여기서 거의 모든 존재라고 쓴 이유는, 아직 배변을 하지 않는 동물이 확실히 없다는 자료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리 말씀드리지만, 앞으로 이어질 내용은 읽으시는 분들의 심기를 다소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으니 주의를 요한다. 아예 읽지 않으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군대에서 한동안 화장실 청소, 그중에서도 변기 청소를 전담했던 나는 언제나 가능한 한 변기를 꼼꼼히 닦으려 했다. 군대나 학교와 같이 시설 관리를 해당 구성원들이 담당하는 경우에는 그다지 화장실 청소를 성실하게 하지 않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그것은 대체로 복불복이거나 징계성이기 때문에. 그래서 보통 변기 청소를 할 때에는 변기 커버에서 배변자의 엉덩이가 닿는 부분과 우리가 똥을 내버릴 수 있는 움푹 파인 그릇(?) 부분만을 휴지와 솔로 슥삭슥삭 닦아내는 사람이 많다. 즉 보이는 부분만 깨끗하게 하려는 심산인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고개를 숙인다면, 그곳에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의 똥이 튀어져 있다. 언젠가 위기탈출 넘버원에서도 방송한 것이지만, 일을 보고난 후 물을 내릴 때에 변기 뚜껑을 덮는 것과 덮지 않는 것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한다. 건강한 사람이 내보내는 똥의 질량과 크기는 엄청나기 때문에 그만큼 강한 수압이 요구되고, 똥을 흘려보낼 때 발생하는 물보라는 생각보다 훨씬 멀리, 많이 사방팔방으로 튀어나간다. 그래서 변기 뚜껑을 덮지 않고 물을 내리게 되면 그것이 칫솔이며 컵이며 온갖 곳에 날아가게 되고, 기껏 내보낸 그것들은 다시 우리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는 것이다. 변기와 멀찍이 있는 칫솔에도 그 똥국물이 튀는 마당에, 하물며 변기 자체는 어떠하겠는가. 청소할 때에 놓치기 쉬운 변기 커버의 아랫 부분과 그 커버를 받치는 윗 테두리 등에는 정말 많은 흔적들이 남아있다. 나는 그런 부분들이 방치되는 것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그 부분을 특히 더 신경써서, 똥국물이 튄 자국 하나하나 세세히 지워나갔다. 그러면서 '우리의 엉덩이에도 적지 않은 똥국물이 튀고 있겠군'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확실히 묵직한 그것은 떨어지면서 첨벙, 많은 물방울을 만들지 않나.


고등학생 때였나 하루는 급식으로 카레가 나왔었다. 그때 나와 같이 밥을 먹은 한 친구는 비위가 약했었는데, 밥 먹는 데 똥 얘기를 하는 걸 정말 못 견뎌하는 친구였다. 짓궂은 마음이 들은 나는 카레가 나오자 사정없이 똥 얘기를 해댔고, '똥 먹는 데 카레 얘기하지 마라'는 말로 쐐기를 박았다. 짱구는 못말려에 나오는 대사였다. 결국 그 친구는 반도 안 먹은 밥을 버렸고, 그 일로 미안해진 나는 다시는 그 친구 앞에서 똥 먹는 데 카레... 아니, 밥 먹는 데 똥 얘기를 하지 않았다. 된장국이 나온 어느날 속으로 키득 거리기만 하며 똥 얘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스스로를 대견히 여기면서. 하지만 그 이후로도 여전히, 지금까지도 나는 똥 얘기가 좋다.


아마 나는 똥 그 자체보다도 쾌변이 주는 흐뭇함을 좋아하는 것 같다. 또 그 누구도 똥을 싸지 않고는 못 살며, 아무리 이쁘게 장식한 음식이라도 그것이 두 번째 구멍을 통해 세상을 볼 때에는 개밥처럼 생긴 밥을 먹었을 때와 동일한 모양으로 나온다는 공평함 때문에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이쁜 여자라도 못생긴 여자보다 더 아름다운 똥을 만들어낼 재간은 없다. 죽음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존재의 잠정적인 마지막 단계라는 점에서 인간을 하나로 묶어준다. 그 앞에서 우리를 평등하게 만든다.


지금도 전 세계의 수십억을 헤아리는 우리 인간들은 똥을 싸고 있다. 언젠가 중국인들이 동시에 백두산 천지에 오줌을 누면 그것이 흘러넘쳐 홍수를 이룰 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굳이 중국인들까지 갈 것 있나 싶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의 힘만으로도 그러한 과업은 이뤄낼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그보다 더 거대한 집단인 인류가 매일 싸대는 그 똥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고작해야 개똥이나 새똥만 군데군데 나뒹구는 이 신비로움이란. 역시 대지는 우리의 똥들을 받아들이고도 남을 만한 도량을 갖고 있구나.


난데없는 똥 얘기에 당황하거나 불쾌해 하실 분들에게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다음에는 더 진지하거나 더 재밌는 똥글(말 그대로 똥에 대한 글)로 인사드리고 싶다. 똥 얘기는 더이상은 naver를 외치실 분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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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arlonPa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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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플래쉬

리뷰/영화 2015. 5. 5. 12:17

스티븐 킹의 에세이 겸 문학이론서 <On writing>(국내명: <유혹하는 글쓰기>)를 보면 이 작가가 창작에 대해 생각하는 바를 알 수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예술은 마치 고고학자가 지층 속에 파묻힌 공룡의 화석을 탐사하듯이 우리에게 감추어져 있던 무언가를 발견해나가는 것일 뿐이라고. 이 이론(?)에 따르면, 스티븐 킹이 만들어냈다고 알려진 이야기들은 사실 우리에게 소개된 것이다. 이 태도는 예술에 대한 겸허함을 갖춘 동시에, 예술이라는 거대한 세계를 여행하는 인간의 자그마한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음악에도 이 생각을 접목시키자면, 음악은 음악가들의 영감으로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재능과 노력으로 발견될 따름일 것이다. 근데 이 발견은 누군가에게는 가능한 반면, 누군가에게는 불가능하거나 때로는 많은 희생을 요구하기도 한다. 궁극의 음악─그런 것이 실제로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이라는 것은 좀처럼 인간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 같다. 특히 연약한 인간의 육신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연주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위플래쉬>는 이 감당하기 어려운 과제를 짊어지려 했던 용감한 인간의 이야기다. 오직 신들에게만 허락된 것 같은 살인적인 난이도의 재즈곡을 소화하려는 가련한 주인공, 앤드류 네이먼(마일즈 텔러 분)은 참혹함 속으로 점점 빠져들어간다. 앤드류가 드러밍에 있어 내리막을 걷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한계를 뛰어넘는 드러밍에 가까워질 수록 앤드류의 몸도 마음도 맛이 간다. 이야기의 얼개만 보자면 신화적이기도 하고 비극적이기도 하다. 신적인 영역에 도달하려 했다가 신세 망치는 이야기는 창세기의 아담과 이브, 그리스 신화의 이카로스를 비롯해 우리에게 친숙한 테마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주제는 역시 예술보다는 맹목성인 것 같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탐닉하는 것이 음악이고 재즈여서 그나마 고상해 보이고, 그 집착의 결과물이 멋져 보이는 것은 맞다. 그러나 음악이든 돈이든 간에 모든 가치를 깔아뭉개는 맹목성에는 어떤 위험함을 느끼게 된다. 맹목과 광기가 낳은 결과물은 보고 듣기에 아름다울지언정 그것으로 점철된 인생을 선뜻 동의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작중에서 앤드류가 말하듯이, 밋밋하게 오래 살다가 잊혀지는 인생이느니 화끈하게 짧게 살다가 영원히 기억되는 인생을 선택하는 게 그에게는 최선이었을지도 모른다. 또 그러한 맹목성이 예술의 가능성을 확장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질문이 나올 수도 있겠다; 건전한 인생과 불멸의 성취 둘 다 얻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이게 꼭 딜레마여야 하는 것인가? 글쎄, 그럴 수만 있다면야 역사상의 그 많았던 '황폐한 거인들'을 볼 필요도 없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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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02.

야구 2015. 5. 2. 20:26

아, 밴 헤켄! 아, 배영수!


야구가 있는 세상에 태어나서 정말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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