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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2.19 혼자 추는 춤, 언니네 이발관

언니네 이발관은 대학입학 이후에 알게 된 밴드다. 예나 지금이나 척 보기엔 이상한 밴드 이름으로 인해 비주류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로 막연히 생각했었다. 근데 이게 웬일, 음악이 좋아도 이거는 사정없이 좋은 게 아닌가. 그때로부터 나에게 단 하나의 밴드를 고르라면 이발관밖엔 없다. 20대 이후의 나의 정서에 이발관보다 영향력이 큰 존재는 몇 개 되지 않는다.


하지만 2008년 이후로 언니네 이발관은 긴 시간 동안 단 한 곡도 발표하지 못 했다. 나의 20대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 그들이, 정작 20대가 된 나에게 신곡을 들려주지는 못 한 것이다. 이발관의 리더인 이석원 씨가 인터넷에 게시하는 일기를 보면서, 20대는 고사하고 내가 서른이 넘어서도 그들이 신곡을 발표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많이 했었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쉼없이 작업을 해왔음에도 앨범을 내놓지 못한다는 것에서 창작자 스스로도 많은 부담과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 원인이 특유의 완벽주의적 성향에 있음을 아는 팬들은 그저 오랜 가뭄을 그쳐줄 비를 바라는 농민의 심정으로 그들의 새 앨범을 기다렸다. 워낙에 완결된 작품으로서의 앨범을 중요시 하는 밴드이기에 그 흔한 싱글앨범을 기대하는 것도 어려웠다.


그러나 2015년 12월 17일, 언니네 이발관은 싱글앨범 <혼자 추는 춤>을 발매했다. 2015년이 보름도 안 남은 시점에, 더 이상 해를 넘겨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 그들의 길고 긴 공백을 깬 것이다. 단 두 곡의 싱글앨범. 아직도 정규앨범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이지만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또 하나의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은 그들이 참으로 존경스럽다. 언니네 이발관은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창작자보다도 창작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며, 모름지기 창작자라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 절절히 알려준 사람들이다.


끝없는 자기비하와 우울감, 여러 악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다운 것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잃지 않으며 그 염병할 작업(이석원 씨의 말에서 인용)의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이겨낸 이발사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아마도 그건 이석원 씨가 일기에 적은 대로, '아름답지 못한 세상을 아름다운 것들로 돌파하기 위하여'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Posted by MarlonPa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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