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나의 글/짧은 글 2015. 4. 18. 14:30

스물여섯 살이 되었다. 오늘이 사월 십팔일이니까 백 일도 전의 이야기다. 대학에 갓 입학할 때의 나는, 내가 스물여섯 살이 되면 결혼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스무 살에게 스물여섯이란 육 년 후의 일이고, 이십 대가 꺾이는 지점이니 한참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결혼이라는 큰 일 역시도 그때에는 맡을 수 있겠거니 했겠지.


그 한참 먼 미래에 막상 와보니, 나는 그때 생각했던 것만큼 현명하거나 책임감이 있거나 바랬던 만큼의 능력도 딱히는 없는 것 같다. 당연히 미혼 상태다. 무엇보다 내가 스물여섯 살에 군인일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상황이 딱히 애석한 것은 아니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 살았던 건 아니지만 삶이 나에게 바라는 대로, 내가 삶에게 바라는 대로 내 나름의 일들을 해왔고 스무 살의 나로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스물여섯 살이 되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더 열심히 살았으면 좋았을걸 하는 후회는 있지만, '늦었다고 생각됐을 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격언이 뭘 말하고 싶어하는지도 알 것 같긴 하다. 난 그래서 지금의 나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다. 스무 살의 내가 스물여섯 살의 나에게 기대했던 것과는 달라진 것도 있고 그때와 여전한 것도 있지만, 그것들이 바람직한 바람이길 바랄 뿐이다.


이제는 서른두 살의 나에게 갖는 기대들이 있다. 그때에는 아빠가 되었으면 좋겠다(군대로 인해 나의 결혼 희망 연령은 이 년 늦추어진 스물여덟 살이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과, 그분을 알리는 것과, 글을 잘 쓰는 것과, 영화를 잘 이해하는 것과, 악기를 잘 다루는 것과, 영어와 일본어에 능통하는 것과, 무엇보다 좋은 남편이고 좋은 아빠가 되는 것에 나의 길이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당장은 생각이 안 나 적지 못한 다른 바람들도 더 있을 것이다.


술, 담배, 클럽, 친구들, 여자, 게임, 여행, 취직 등등 나의 또래들이 일반적으로 그들의 삶에 수놓는 것들과는 담 쌓고 살았지만 정말 재밌게 살았던 스물여섯 해였다. 오히려 그런 것들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과는 다른 오락과 다른 생각을 누릴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 서른두 살에 나는 어떤 감상으로 지난 날을 돌아볼까. 얼른 서른두 살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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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arlonPa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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