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 중 하나는 불법 다운로드입니다. 저작권으로 보호받는 저작물을 정당한 대가 없이 즐기는 그것 말입니다. 저 역시 한 때는 당나귀, 프루나, 토렌트, 각종 웹하드를 많이 이용했었기 때문에 감히 뭐라 할 주제는 못 됩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반드시 다루고 싶었던 주제이기에, 감히 적어보겠습니다.
저는 불법 다운로드가 도둑질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도둑질이라는 단어가 불쾌하실 분들도 있겠죠. 하지만 그건 그냥 도둑질일 뿐입니다. 우리는 설렁탕집에서 점심을 먹은 뒤에 계산 없이 나오는 법이 없습니다. 당신이 뉴스에 가끔 나오는 먹튀꾼이 아니라면 말이죠. 그건 설렁탕 한 그릇을 즐겼으면 그에 마땅한 값을 지불해야 한다는 상식적인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그 값을 안 냈다가는 경찰서에 가게 되고, 덤으로 뉴스에도 나올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음악, 소설, 영화, 소프트웨어 등등 우리가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쉽게 훔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그렇지가 않은가 봅니다. 그것들을 돈 내고 즐기기엔 나의 돈이 아깝다고 생각하거나, 그것을 훔쳐봤자 경찰서나 뉴스에 소환될 가능성은 설렁탕 먹튀보다는 한참 낮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대단히 나쁘고 말이 안 되는 생각입니다. 앞의 생각이든 뒤의 생각이든 다 그렇습니다. 설렁탕을 먹고 즐기는 데에 쓰는 돈은 아깝지 않으면서 저작물을 이용하고 즐기는 데에 쓰는 돈은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제발 돈 들일 가치도 없는 그것들에 소비되는 시간도 아까워할 줄 알았음 좋겠습니다. 또 잡혀갈 걱정이 없으니 훔쳐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주인이 자리를 비워 적발 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설렁탕 집에 들어가서 마음껏 설렁탕을 퍼먹고 나올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고 싶습니다. 시간 아까운 줄 알고, 스스로에게 양심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왜 그토록 저작물에 대해서는 무딘 태도를 갖는지 모르겠습니다. 무딘 태도라니, 말 참 곱게 한 것 같습니다.
창작자가 지속적인 창작활동을 하려면 결국에는 자신의 창작물로 먹고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왜 작가 지망생에게 굶어 죽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냅니까? 자신이 창작한 글을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팔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수준 높은 글을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글로 어느 정도 먹고 살 정도는 되는 글쟁이들입니다. 다 그렇습니다. 음악, 소설, 영화, 소프트웨어 등등 모든 창작물은 창작자에게 어느정도의 영리가 보장되지 않으면 결코 지속가능할 수가 없습니다. 설렁탕집이 설렁탕을 못 팔면 설렁탕집일 수 없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습니다.
물론 '합리적인' 소비자인 우리가 맛 없는 설렁탕집을 먹여살릴 의무는 전혀 없듯이, 질 낮은 저작물만드는 창작자에게 이익을 보장할 이유 또한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맛집의 설렁탕은 누구라도 돈을 내고 먹어야 하는 게 상식인 반면, 잘 만든 저작물은 돈을 안 내고 이용해도 괜찮다는 몰상식이 상식처럼 여겨지는 분위기엔 정말이지 치가 떨립니다. 그것을 너무너무 이용하고는 싶은데, 그만큼의 금전적 여유는 없으니 어떡하느냐 하는 성토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느 집 설렁탕이 너무너무 먹고 싶은데 돈이 없으니 먹고 튀겠다라는 생각이 용납될 수 없다는 걸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것을 향유할 만한 돈이 없으면 그냥 즐기지 않으면 되는 겁니다. 아니, 즐길 수 없는 겁니다. 설렁탕은 의식주에 들어갈 만큼 생활에 필수적인 영역에 있는 거고, 대개의 저작물은 필수적인 영역에서 순위가 설렁탕에 비해 낮은 만큼 아무래도 지출의 우선순위가 설렁탕보다는 낮지 않겠느냐는, 그래서 설렁탕은 기꺼이 돈을 낼 수 있지만 때에 따라서는 저작물에 돈을 낼 수 없다는 주장 또한 용납될 수 없습니다. 돈은 부족한데 밥은 먹어야겠는 사람은, 설렁탕보다 싼 걸 먹을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무언가를 즐기고는 싶은데 돈이 없는 사람은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더 적은 비용으로 즐길 궁리를 해야 하는 겁니다.
너무 부정적인 이야기만 한 것 같으니까, 긍정적인 부분도 말씀드리겠습니다. 돈 내고 먹는 밥보다 공짜밥이 더 맛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돈 내고 즐기는 저작물은 돈 안 내고 즐기는 그것에 비해 다가오는 바가 확연히 다릅니다. 본전을 뽑아야 하니 더 꼼꼼히 즐기고 꼼꼼히 살피게 됩니다. 그리고 만약 내가 돈을 내고 선택한 저작물이 만족스럽다면, 다음에 또 돈을 내고 즐기고 싶어집니다. 결국 다시 돈을 내고 어떤 저작물을 소비할 것이고, 이것은 선순환으로 이어집니다. 적어도 저의 경우엔 그랬습니다.
저도 한 때는 생각없이 불법 다운로드를 자행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각성을 한 후부터는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만 즐기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예술가는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통념은 정말이지 거지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술가도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잘 먹고 잘 입고 싶은 욕망이 없을 리 없습니다. 사람 사는 것, 사람 바라는 건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맛있는 설렁탕집 주인이 설렁탕 그릇그릇마다 이익을 보는 게 당연하다 생각하신다면, 잘 만든 저작물 하나하나로 저작권자가 이익을 보는 것도 당연하게 생각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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