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미 이치로와 고가 후미타케의 <미움받을 용기>를 표지만 보았을 때, 나는 이 책을 자기계발서라고 단정했다. 제목도 그렇고 책 디자인도 그렇고 영 께름칙한 게 그동안 손이 잘 안 가던 책이었다. 베스트셀러라는 점도 거부감의 한 원인이었다.
하지만 막상 읽고 나니 이 책은 자기계발서라기보단 심리학, 윤리학, 철학을 아우르는 인문학 서적에 가까워 보였다. 그렇다고 전문용어가 난무하는 어려운 책인 것도 아니다. 또 자기계발서적인 느낌도 분명히 있는데, 사색만큼이나 실천의 비중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이 자기계발서적인 느낌은 아무래도 저자들에게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이 책이 다루는 알프레드 아들러라는 심리학자의 사상에서 비롯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책의 서술형식은 아들러 사상을 대변하는 '철학자'와 삶에 불만이 가득한 '청년'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모티브를 따왔다는데, 이러한 방법은 주제를 선명하고 쉽게 전달하는 데 효과적으로 활용되었다. 트라우마에 대한 부정, 인정욕구에 대한 부정, 칭찬과 야단에 대한 부정 따위의, 상식적인 사실과 반대되는 아들러의 사상을 보다 쉽게, 보다 집요하게 파고드는 데에 대화의 형식이 큰 역할을 한다. 질문자인 청년의 질문과 의심이 우리의 질문과 의심을 아주 잘 대변해주기 때문에, 철학자의 대답은 보다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과도한 경쟁과 인정욕구(불만)에 지친 사람들이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대체로 이런 사람들은 숨가쁘게 살다 보니 정작 본인의 심리상태에 대한 성찰을 못 하는데, 이러한 악순환은 사태를 악화시키기만 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심호흡을 하고, 보다 근원적인 원리를 보게 하는 것이 심리학과 철학의 역할이다. 그런 점에서 책에 나오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잘라낸 알렉산드로스의 예는 적절하다. 아들러의 심리학에서, 다른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느라 마음고생하는 당신은 더이상 피해자가 아니다. 당신은 그저 피해자의 가면을 쓰고서 근본적인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 비겁한 사람일 뿐이다. 나는 부모님 때문에, 친구 때문에, 애인 때문에, 때문에때문에 이렇게 힘들어,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한 번 따끔히 혼나봐야 한다. 물론 철학자는 결코 청년을 꾸짖지 않는다. 다만 그의 마음에 자리한 욕심과 비겁함을 관망하게 할 뿐이다. 이것을 깨닫고 나를 야단치는 것은 내 자신이다. 나는 나를 비롯해서 이러한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을 여럿 알고 있다. 그들은 보다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이 책의 교훈을 받아들이는 것은 쓰라린 일이지만, 동시에 구제의 여지를 발견한다는 기쁨도 얻게 해준다.
'공동체감각'이라는 개념은 아들러 사상의 요체이자 가장 난해한 부분이다. 이 사상이 제안하는 이기심과 이타심의 황금비율은 다른 사상에선 듣도보도 못한 것이어서 단번에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곱씹으며 생각할 수록 탁월한 통찰력에 감탄하게 된다. 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자면 최소 세 가지 이상의 새로운 개념어를 거론해야 하므로, 그 작업은 이 서평에서 수행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내 나름의 간단한 설명을 붙이겠다.
타인의 인정을 기대하며 이타적 행동을 하는 당신은 실제로는 지독히 이기적인 사람이다. 이타적 행위 그 자체가 아닌 타인의 인정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인정이라는 보상에 연연하는 한, 당신은 결코 이타적인 사람이 될 수 없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리고 그런 부자유함은 당신의 행복을 갉아먹을 것이다. 당신은 이제 누군가의 인정=보상을 위한 행위가 아닌, 당신 스스로가 만족할 만 한 행위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인간은 결국 세상에 공헌하는 것에서 참된 만족을 느끼기 때문에 언제나는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무언가 공헌을 하게끔 되어 있다. 여기서 거듭 강조하지만 당신을 만족시키는 것은 당신뿐이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알아주고 말고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자유로운 당신의 결정에 당신만 행복하면 됐다. 이기심과 이타심의 밸런스가 인상적인 이 이론은, 추상적이고 이상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지만 확실히 흥미롭다.
인정이라는, 외부에서 오는 보상이 아닌 내면적 동기를 강조하는 것은 칸트적이고, 타인의 간섭이 아닌 주체적 판단을 강조하는 것은 니체적이다. 이러한 철학적 깊이가 이 책을 여타 자기계발서와의 차별점을 만들어 준다.
하지만 모든 사상이 그러하듯, 이 사상에도 허점은 있다. 어쩌면 이 책의 허점일지도 모르고. 세상만사 모든 일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키고 개인적인 층위로만 한정시키기 때문에, 보다 크고 복잡한 일들에 대해서는 애매한 답을 내리거나 외면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런데 문제는 마치 이 책이 아들러 심리학이야말로 삼라만상의 문제를 푸는 마스터키인 마냥 소개한다는 것이고, 실제로는 구조적인 문제일 수도 있는 것을 개별적인 차원에서만 보게 만들 우려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 책을 읽고 세상의 모든 일에 아들러를 들이대는 극단적인 사람은 몇 없겠지만, 그래도 논의의 폭이 좁은 것은 사실이다.
또 이론의 바탕이 인간의 이성에 있는 이상, 결국 이 사상은 허무주의에 가닿을 수밖에 없는데, 그것에 대한 해결책이 종교와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것도 아쉽다. 근현대의 학문은 신의 개입을 인정하지 않는다. 뭐, 그것은 어쩔 수 없다. 모름지기 학문이라면 이성의 검증만이 유효한 시대이니까. 하지만 그 연구에서 발견되는 허무주의를 얼렁뚱땅 넘기는 것은 전혀 이성적이지 않다. 그것은 그저 교조적일 뿐이다.
그럼에도 <미움받을 용기>의 아들러 심리학에는 대단히 뛰어난 통찰력이 있고, 그 나름 정합적인 모델이 있고, 상당히 매력적이다. 이 아이디어를 실생활에 접목시킬 수만 있다면 수많은 현대적 정신병이 고쳐지리라 기대된다. 그게 말처럼 쉽지 않을 뿐이지.
이 책에도 나와 있는 히브리 전통의 교훈인데, 열 명의 사람이 있다면 그 중 두 명은 반드시 당신을 좋아하고 한 명은 반드시 당신을 싫어하고 나머지 일곱은 그냥저냥이다. 어차피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고, 그렇다 해서 모두가 당신을 미워하게 되지도 않는다. 미움받는다는 것은 어쩌면 내 본연의 모습을 찾는다는 말과 같을지 모른다. 몇 사람한테 미움 좀 받는다고 인생이 망가지진 않는다. 오히려 미움받지 않으려다 인생이 더 잘 망가진다. 당신은 무엇을 택할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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