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6.03.10 나쁜 기억 지우개
  2. 2016.02.27 무한도전의 한풀이 2
  3. 2016.02.20 20160220
  4. 2015.03.14 418회-무도 어린이집(14.03.07. 방영)

기억이라는 게 참 묘하다. 시험기간에 죽어라 암기하는 정보들은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휘발해 버리는데(더 비극적인 경우는, 시험을 치르기도 전에 날아가는 것이다.), 잊고 싶어 안달이 나는 기억들은 좀처럼 잊혀지지 않으니 말이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우리의 나쁜 기억이 나중에 있을 비슷한 경우의 안 좋은 일을 미리 피할 수 있게끔 도와주기 위해 뇌에서 일부러라도 더 붙잡아두는 것이라 설명하기도 한다. 마치 액땜이나 백신 같은 역할을 나쁜 기억이 맡아서 한다는 건데, 일견 그럴 듯해 보인다.

역사기록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집단의 기억을 정직하게 보존하여 좋은 기억은 모범으로 삼고, 나쁜 기억은 반면교사 삼아서 진일보할 기회를 후대에게 제공하는 것이 역사교육의 한 목표이지 않는가. 역사편찬은 자화자찬하라고 있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나쁜 기억'이란 없는 것 같다. '나쁜 일에 대한 기억'만 있을 따름이다. 기억은 그 자체로 중립적인 것이어서, 좋고 나쁨을 가릴 수 없고 따라서 뇌리에 새겨진 기억을 지우려는 것은 자기 입맛에 맞는 역사를 취사선택(우리는 이것을 역사 왜곡이라 부른다.)하려는 독재자와 다를 바 없는 것 아닌가.


하지만 집단과 개인을 대조할 수는 있어도, 동일시하는 것은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시키는 일인지 모른다.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에 나온 아이디어를 빌리자면,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은 단선單線적인 것과 양자量子적인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단선의 관점에서 인생은, 끊어짐 없는 한 가닥의 긴 실과 같아서 앞의 사건과 뒤의 사건이 반드시 이어져 있다. 가령 어릴 때 부모님께 학대를 받으며 자랐다-불안정한 인격을 갖게 된다-결혼 후에도 불안정한 가정을 가진다-다시 자녀를 학대한다... 와 같이 인과관계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필연적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세계에서는 알고리즘을 통과하는 항들이 결코 정해진 루트를 벗어날 수 없듯이 인간도 무기력하게 거대한 운동에 휘말리기만 한다. 이 세계는 예측이 가능한 '그래서'의 세계이다.

반면에 양자의 관점에서 인생은, 분필로 그어놓은 선을 자세히 관찰하면 실제로는 점들의 연속에 불과한 것과 같아서, 각 사건들이 반드시 이어져 있지는 않다. 가령 어릴 때 부모님께 학대를 받으며 자랐다-불안정한 인격을 갖게 된다-'그러나' 우연찮은 계기로 인격의 변환점을 맞이한다-행복한 결혼생활을 한다-자식을 사랑으로 키운다... 와 같이 물리법칙을 벗어나는 우연적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세계에서는 지난 날의 상처가 반드시 앞으로의 실패를 불러오거나, 지난 날의 영광이 반드시 앞으로의 성공을 약속하지 않는다. 이 세계는 예측이 불가능한 '그러나'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세계이다.


우리가 나쁜(것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자 할 때, 그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과거의 흑역사가 끊을 수 없는 족쇄가 되어 현재를 괴롭히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단선적 인생에서는 이 족쇄를 결코 끊을 수 없다. 발사된 총알은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지 못하는 법이다. 하지만 양자적 인생은 이 족쇄를 끊을 수 있을지 모른다. 만화가는 지금까지의 컷들의 내용을 모조리 반전시킬 수 있는 새로운 컷을 그려넣을 수 있다. 나쁜 기억 지우개는 곧 만화가의 연필이 될 수도 있다. 카카오톡 대화명으로 한 번씩은 꼭 보게 되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의 정신은 바로 양자의 정신이다. 과거가 아무리 구질구질했어도 지금, 당장이 중요한 것이다.

다시 한 번, 나쁜 기억을 지운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미셸 공드리의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 나온 것처럼, 실제로 기억을 없애기를 바라는 건가. 아니면, 어두운 과거를 인정하되, 그것으로부터 독립할 기회를 갖고 싶다는 건가. 누군가에겐 전자일 수도, 또는 후자일 수도.


무한도전 <나쁜 기억 지우개> 편은 그 출발부터 한계가 있었는데,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나쁜 기억을 솔직히 말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것을 이번 에피소드는 염두에 두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나쁜 기억에 대한 상담은 카메라가 없는 은밀한 것이어야 하는데 말이다. 몇몇 시민들은 자신의 아픈 기억을 털어놓긴 했지만 방송을 탄 대부분의 시민들은 주로 현재의 고민을 털어놓기만 했다. 따라서 이 특집은 그 제목이나 취지에선 다소 빗나간 분량을 뽑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는 한계에서도 의미있는 그림들을 건지기는 했다. 특히 광희가 상담했던, 과거에 따돌림을 겪은 한 시민분이 인상적이었다. 적어도 방송상의 그는, 나쁜 기억 지우개가 필요없어 보였다.


그나저나 기억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맨 인 블랙>에서처럼 후레쉬 쏴서 기억을 지울 수 있다면─ 우리 인생은 더 행복해질까. 최소한 트라우마라는 정신병은 많이 없어지겠지. 그런데 그런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이 많을까.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기억을 선별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들은 나쁜 기억을 좋아하는 건가 싫어하는 건가. 기억이라는 게 참 묘하다.

'리뷰 > 무한도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한도전의 한풀이  (2) 2016.02.27
418회-무도 어린이집(14.03.07. 방영)  (0) 2015.03.14
Posted by MarlonPaik
,

1. 무한도전은 웃기다. 지난 십년 동안 무한도전이 우리에게 준 웃음을 질량으로 환산할 수 있다면 그 거대한 질량 덩어리의 중력은 틀림없이 끈끈할 것이다. 지난 세월 무한도전은 대한민국의 광대 노릇을 누구보다 잘 해내었다. 그런데 요즘 광대짓 말고도 무한도전이 집적거리는 영역이 하나 더 있는 것 같다. 바로 무당이다. 무당의 다양한 역할 중에서도 억울한 넋을 위로하는 씻김굿판의 무당 말이다.


2. 이 심상찮은 변화의 조짐은 <바보 전쟁>에서부터 느껴졌다. 어쩌면 더 이전부터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확실히 감지한 것은 <바보 전쟁>에서부터였다. 아시다시피 <바보 전쟁>은 <2015 무한도전 특별기획전> 편에서 하하와 광희의 아이디어로 제작된 에피소드다. 아마 태곳적의 코미디언들도 웃음의 소스로 삼았을 바보. 이 식상한 바보 코드로 무얼 어떻게 만들지 기대보단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해당 에피소드는 적어도 내겐 제법 재밌었고, 심형탁과 솔비 같이 그간 예능에서 조명받지 못했거나 활동이 뜸했던 사람들에게 대중적 관심을 불러 일으킨 의의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더 감명을 받은 부분은 다름아닌 '바보 어벤저스' 멤버들의 흑역사 청산이었다. 간미연의 'lose' 사건, 말이 필요없는 솔비, 과거에 상처가 있었던 심형탁 등 어떤 분야에 대한 지식이 다소 모자랐을 뿐인 뇌순남녀의 담담한 고백이 참 인상적이었다. 이들이 집단적으로 같은 옷을 맞춰 입고 한 곳에 모여 앉아 자신의 아팠던 과거를 얘기하고, 용서하는 모습을 보라. 영락없는 심리치유센터의 현장이 아닌가. 이후 김구라와 전현무를 초청해 벌인 지식대결은 이 심리치유의 마지막 의식이었다. 한맺힌 넋에 대한 제물이었다.


3. 한편 <못.친.소 2>를 보자. 이미 사년 전에 활용했던 소재의 재활용. 나는 이 기획이 끔찍하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이 아이템이 재활용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던가? 외모비하에 대한 불쾌함은 둘째 치고, 저번 시즌의 멤버들과 겹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웃음을 뽑아낼 수 있는 연예인들이 남아 있기나 한 건지, 또 같은 컨셉을 갖고 어떻게 웃기려는 건지, 이 기획이 태작이라는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 <바보 전쟁>과 달리, 이번 에피소드는 고압의 바람을 맞는 초고속 영상 정도를 제외하면 삼부작이나 한 것 치고 재미가 거의 없었다. 내성이 단단히 든 것이다. 내가 외모로 뭘 어쩌려는 특집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이번 에피소드는 꼼짝없이 노잼 편으로만 남을 성 싶었다.

근데 에피소드의 말미에서 무한도전이 또 굿판을 벌이고야 말았다. 시즌 2 최고의 매력남을 차지한 우현의 소감과 하상욱 시인의 멘트가 이 자칭 페스티벌의 성격을 바꿔버렸다. 한때는 자신의 외모를 비하했던 사람이 이제는 당당히 매스 미디어에서 자신의 외모를 비호庇護한다. 세련된 도시적 이미지의 시인이 자신의 민낯과 허당끼를 내놓으며 하는 말이, '마치 휴가를 즐긴 것 같다'고 했다. 반짝반짝 이쁜 것들이 옳은 이 시대에 '못생길 권리'를 누리고자 하는 이 못.친들의 잔치는 그 종반부에서 시원한 한풀이를 쏟아낸다.


4. 두 에피소드는 각각 어떠한 열등함을 내세우고, 이 테마에 어울리는 사람들을 그러모아 그것을 만천하에 드러내놓음으로써 웃음을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이 기획의 결과는 모두 웃음보다는 치유의 임팩트가 더 컸으며, 그렇기 때문에 역사에 길이 남을 재미를 뽑아내진 못 했다. 특히 웃음에 있어서만큼은 <못.친.소 2>는 나에겐 실패했다.

또 <바보 전쟁>에선 맞춤법과 수도 맞추기 문제 같은, 바보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틀릴 수 있는 문제로 사람을 바보로 만들었다. 그리고 <못.친.소 2>에선 변진섭이나 바비 같은, 저 사람들이 못생긴 거면 도대체 세상에서 안 못생긴 사람은 몇이나 되는 걸까, 싶은 외모의 게스트를 초청하는 무리수를 보였다. 뭐, 이런 우기기야 이미 저번 시즌에서도 보여준 적이 있긴 하다. 무엇보다 고압의 바람을 정통으로 맞아서 잘생길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니까 두 에피소드 모두 시청자들이 출연자의 지적 수준이나 외모를 보며 웃긴 웃는데, 양 특집에서 제시한 '바보스러움'과 '못생김'의 기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정작 얼마 안 된다는 씁쓸한 특징을 갖고 있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도 '뇌순남'과 '못.친'의 자격을 당당히 갖췄다.


5. 이번에 다룬 에피소드들엔 잡다한 단점들이 많고, 웃음의 무게가 다른 편만 못 하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이제 더이상 익살만 넘치는 광대이고 싶지 않은 것 같다. 너무 똑똑하고 너무 잘생긴 이 세상에서, '그래 나 하나쯤은 멍청하고 못생겨도 되잖아'라며 위로해주는 심리치료사, 내지는 그동안의 한을 풀어주는 무당 노릇을 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 하는 모양이다. 실제로 우리에게 멍청하고 못생길 권리가 주어진다면, 그것은 확실히 휴가처럼 느껴질 것 같다.

주말 저녁 황금시간대에, 그것도 오락 프로그램이 이런 투잡을 뛰어도 되는 걸까. 뭐, 무한도전은 그동안 종종 웃음보단 감동을 더 많이 주곤 했다. 무엇보다 무한도전이 투잡을 뛰든 쓰리잡을 뛰든 이것은 매스 미디어이고, 매스(대중)의 정당한 지지를 받는 한, 무한도전의 이런저런 역할이 문제될 일은 그다지 없을 것 같다.

'리뷰 > 무한도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쁜 기억 지우개  (0) 2016.03.10
418회-무도 어린이집(14.03.07. 방영)  (0) 2015.03.14
Posted by MarlonPaik
,

20160220

나의 글/일기 2016. 2. 20. 20:00

세상에서 가장 멋진 것 중 하나는 무한도전.

'나의 글 >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60102  (0) 2016.01.02
이적  (0) 2015.11.03
20150830  (0) 2015.08.30
Posted by MarlonPaik
,

<무도 어린이집> 특집은 <토토가>, <나홀로 집에>, <끝까지 간다>, <무도 큰잔치> 특집 같이 연말과 연초를  화려하게 장식한 특집들에 비하면 소품 같은 느낌을 준다. 대단한 반향을 불러 일으키지도 못 했다. 물론 무한도전이기에 특유의 성실한 웃음은 있었지만 일련의 특집들 사이에서 유난히 힘을 뺀 특집이라는 인상을 준다. 더군다나 다음 특집이 새로운 멤버를 뽑고 5대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자리여서 그 규모는 더 작아보이고, 앞으로도 인용될 것이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무도 어린이집>은 오히려 근 몇 달 동안의 특집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특집이었다. 이미 단물이 빠진 '육아'와 비슷한 아이템을 들고 나온 특집인데도 그렇다. 사실 <아빠 어디가>나 <슈퍼맨이 돌아왔다>와 같은 육아 예능은 육아를 내세우긴 하지만 스타들의 귀여운 자녀들이 가장 앞에 위치한다. 그런 아이들을 스타로 만들고 팬을 영입한다. 육아 역시 무시되지는 않는다. 연예인인 아버지의 직업 상 그간 힘들었던 자녀와의 시간들을 제공하는데, 이 과정을 지켜보는 게 또다른 즐거움이다.


하지만 <무도 어린이집>은 육아가 아닌 보육(시스템)을 아이템으로 삼았다. 육아와 보육은 사전적으로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지만, 용례적으로는 전자가 개인적이라면 후자는 공공적인 뉘앙스를 많이 풍긴다. 그래서 기존 육아 예능은 아빠-자녀가 그림을 만들어내지만 <무도 어린이집>에서는 보육교사-아동이 그림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꽤 큰 차이인데, 육아 예능에서는 아빠와 자녀 간의 교감에 포인트가 두어졌다면 <무도 어린이집>에서는 자신의 자녀를 교육 기관에 위탁하는 부모에게 책임을 다하는 것에 포인트가 두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아 예능에서 전국 단위로 여행을 다니고 단가가 더 비싼 그림을 뽑아내더라도,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작다. 이것은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그러하다는 것이다. 정말로 육아 예능에서 보여주는 이야기는 작은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그런 작은 이야기를 누릴 수 없었던 연예인과 자녀에게 그런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들의 나름 칭찬받을 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도 어린이집>은 무대 자체가 어린이집이라는 장소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규모와 단가 면에서는 앞선 프로그램들과 비교할 바가 못 되지만 훨씬 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번 특집은 아빠와 자녀가 어쩌다 한 번 가게 되는 '특별한 여행'을 담지 않고,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을 일상 속에서 어떻게 기르고 있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무한도전의 모든 멤버가 아버지가 되었음에도 굳이 다른 사람의 자녀들을 돌보는 것이다('그 녀석'의 공백으로 인해 무도 멤버 전원이 아버지가 된 것은 이번 기획에 있어서 참으로 미묘한 사실이다.). 육아 예능이 이벤트를 다룬다면, <무도 어린이집>은 시스템을 다룬다. 최근 어린이집 교사의 폭행 문제가 이번 특집을 낳았을 것이다. 시사 문제를 꼼꼼히 챙기는 무한도전이기에 이러한 접근이 낯설지 않다. 그러면서도 재미를 살뜰히 챙기는 그들의 공력에는 혀가 내둘러진다.


나는 이번 특집이 시사적이고 공익적(?)인 주제를 삼았다는 것만으로 인상적이라 평하지 않는다. 멤버 전원이 총각이었던 2006년부터 지금까지 10년 동안 무한도전을 지켜봐온 사람으로서, '어느새 이 프로그램이 이렇게 성숙해졌을까'를 문득 깨달은 것에도 있다. 우리는 모두 나이를 먹는다. 그리고 그것은 대개 한탄의 대상이 된다. 무한도전 역시 노쇠해져가고 있다. 아직은 건재하지만, 언젠가 무한도전에도 어쩔 수 없는 노쇠함과 끝은 올 것이다. 하지만 다른 프로그램들이 나이 먹는 것을 이겨낼 수 없어 폐지의 길을 걷는 데에 비해, 무한도전은 나이 먹음을 프로그램에 녹여가고 있다. 얼마 전 오스카 작품상 후보에 오른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보이후드>가 영화 평론가들에게 마르지 않는 칭찬을 받고 있다. 영화라는 매체에 좀처럼 담기 힘든 10년이라는 시간을 리얼타임으로 담아냈기 때문이다. 무한도전 역시 그에 못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여전히 까불 때에는 까불지만 또 어느 때에는 적잖이 무게감 있는 메시지를 담아낸다. 그 메시지를 담아내는 사람들은 다름아닌 이 프로그램과 함께 열 살의 나이를 먹어온 PD와 멤버들이다. 그들 역시 자기 자녀의 육아를 위탁하는 입장으로서, 누군가의 자녀를 돌보았다. 여기에 지난 10년간 쌓아온 무한도전만의 영상문법이 자연스레 어울린다.


10년의 경력을 매너리즘이 아닌 성숙함과 참신함으로 환원하는 데에는 짐작 못할 수고와 열정이 요구되었을 것이다. 나는 무한도전의 나이 먹는 법을 존경한다.

'리뷰 > 무한도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쁜 기억 지우개  (0) 2016.03.10
무한도전의 한풀이  (2) 2016.02.27
Posted by MarlonPai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