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은 구원 여정을 그리는 이야기에 빠질 수 없는 소재이다. 진창을 헤매지 않고서야 구원의 의미를 알 수가 있을까. 영화 <밀양>의 주인공 신애는 이미 남편을 여읜 채로 우리 앞에 등장한다. 배우자의 상실, 이미 충분히 그녀는 고달프다. 그녀에겐 이제 외동아들뿐이다. 그러나 그 아들마저 유괴되어 목숨을 잃는다. 창세기 후반부의 등장인물 야곱은 그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나중에 찾게 되지만), 자신도 저세상으로 따라가겠노라 말했다. 신애도 그녀 인생의 모든 활력을 잃어 버린다.
그때 그녀는 어떤 계기로 기독교에 귀의하게 된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그녀의 영혼은 구원을 맛보게 된다. 그녀의 활짝 웃는 얼굴이 타이트하게 잡히는 쇼트는, 역설적이게도 그녀가 아들을 여읜 후에야 처음으로 등장한다. 그 티없는 웃음이 당혹스럽다. 물론 그녀가 마음의 평화를 얻고 그 질곡에서 헤어나온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아직도 러닝타임은 한참 남아있다.
새 삶을 누리는 신애는 아무래도 유괴범의 일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고민 끝에 그녀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유괴범을 용서하기로 한다. 그냥 마음으로 용서하는 것만이 아니라 직접 대면하여 용서하리라 마음 먹은 신애는 교도소에 면회를 간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유괴범도 교도소에서 하나님을 알아버린 게 아닌가. 더없이 평안한 얼굴로 자신의 죄사함 받음을 고백하는 유괴범을 보고 내면의 어떤 끈이 끊어져 버린 신애. 이제 이야기는 새로운 막에 접어들게 된다.
용서가 폭력이 될 수 있을까. 내가 용서하기도 전에 이미 나쁜 놈이 용서를 받았다. 이게 무슨 짜고 치는 고스톱도 아니고, 창자가 뒤틀리고 삶의 모든 것이 주저앉는 고통 가운데에서 피해자만 등신 같이 휘둘리고 있다. 신애에게 있어 신은 이 사달의 공범, 아니 주범이다. 그런 신에 대한 악다구니가 정당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울분의 표현을 단지 객기로 치부하는 것은 용렬한 일이다.
<밀양>은 비유와 암시로 가득 차 있다. 제목인 밀양密陽을 secret sunshine-비밀의 햇볕으로 번역하는 것부터 해서(경남 밀양의 密은 '비밀하다'가 아닌 '빽빽하다'는 뜻이다.), 대사와 연기, 상황에서의 의도적인 터치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때로는 너무 작위적이지 않나 싶을 정도이지만, 이창동 감독은 이미 전작들에서도 그러한 표현을 즐겨한 바 있다.
그러면서도 어떤 장면들은 소름끼치게 사실적인데, 특히 기독교와 관련된 장면들은 다른 영화들이 꿈도 꾸지 못할 리얼리즘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 삽입된 예배 장면들은 실제 예배실황을 보는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드는데, 이것이 극영화에서 가능한 일인지 놀라울 따름이다.
주인공 신애 역을 맡은 전도연은 커리어 최고의 연기를 펼친다. 그녀의 옅은 메이크업과 깡마른 몸은 영화의 삭막한 분위기를 내내 유지시켜주고, 그녀의 연기는 말할 수 없는 슬픔(과 분노)를 어떤 말보다도 절절히 표현해 낸다. 더불어 신애를 짝사랑하는 종찬 역의 송강호 역시 커리어 최고 수준의 연기를 펼치는데, 전도연만큼 화려한 개인기를 보여주기 힘든 역할임에도 그 존재감만큼은 결코 그녀에게 밀리지 않는다. 종찬은 이 극의 팽팽한 긴장감을 풀어주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자, 신애를 좋아한다는 것 외에는 이 이야기에서 항상 한 발자국씩 떨어져 있는 관찰자이다. 그로 인해 이 영화의 톤은 비슷한 장르의 다른 영화들과 뚜렷한 차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밀양>은 한동안 전도연을 '칸의 여왕'의 자리에 앉혀준 작품으로 유명하다. 그것은 멋진 일이다. 유럽 삼대 영화제 중에서도 가장 권위 있다는 칸 영화제에서 연기상을 받았다는 것은 영화계를 넘어서 나라의 경사로 여겨질 만하다. 하지만 여우주연상이라는 찬란한 타이틀이 영화를 가릴 때도 있지 않나 싶다. 영화평론가 허지웅은 연기상은 연출자의 몫이어야 한다고 쓴 적이 있다. 그만큼 연기라는 것은 연기자 일신의 힘만으로 일구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일 테다. 연출과 각본이 좋은 연기를 만들 수는 있어도, 연기가 좋은 연출과 이야기를 유도하는 일은 거의 없다. 아무리 연기력에 만렙을 찍은 배우라도 지뢰 같은 작품을 만나 그(녀)의 경력에 먹칠을 하는 경우를 우리는 어렵지 않게 본다. 그렇지만 나는 전도연이 과대평가를 받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녀는 갈채받아 마땅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것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다만 그녀의 탁월한 연기와 함께 이 영화가 제공하는 풍부한 영화적 체험들을 '칸의 여왕' 수식어에 홀려 놓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군소리가 길었다.
극중 신애는 '햇빛에도 다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여집사의 말에 '이 빛에 무슨 뜻이 있느냐고, 여기엔 아무 것도 없다'며 냉소적인 대답을 한다. 하지만 여기는 밀양이다. 온갖 비밀한 뜻이 햇볕 속에 감추인 곳. 영화의 마지막 장면, 빽빽하게 내리쬐는 볕이 무거워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