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자크 루소의 <에밀>을 얼마 전에 다 읽었다. 흥미롭지만 팍팍 읽어 나가기엔 힘든 책이었다. 철학자 칸트는 시계처럼 살기로 유명했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산책을 하는 그를 보며 동네 사람들이 시간을 알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그런데 그 칸트가 딱 하루 산책을 빼먹은 날이 있는데, 그가 <에밀>을 보던 날이었다. 어찌나 책을 열중해서 읽었던지, 산책 시간도 잊어버렸고 동네 사람들도 그날은 시간을 종잡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그러한 <에밀>이건만, 이 책을 다 읽는 데 소요된 시간은 6개월. 성경 이후로 가장 긴 시간을 할애한 책이었다.
내가 읽은 판본은 '올재 클래식스'의 박은수 선생의 역본. 사색의 전통 위에 빛나게 서 있는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군 생활의 가장 큰 보람 중 하나라고 감히 말할 수 있으리라. 책에 대한 나의 비루한 설명을 늘어놓기 보다는, 이 책에서 발췌한 빼어난 몇몇 부분을 옮겨 적음으로써 할 말을 아끼려 한다.
(페이지 수는 올재 클래식스에서 2013년에 펴낸 판본의 것임.)
"아이를 유식하게 만들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학문을 가르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학문을 사랑하는 취미를 붙여 주고 그 취미가 더욱 발달되었을 때 학문을 배우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문제다. 이것이야말로 틀림없이 모든 좋은 교육의 근본 원칙이다." p. 230
"잘못을 저지를 때 얼굴을 붉혀야지, 잘못을 고칠 땐 그럴 필요가 없네." p.443
"기쁨은 얻고 싶어하면 얻어지는 것이다. 만사를 까다롭게 만들어, 우리 앞에서 행복을 밀어내는 것은 억측뿐이며, 행복해지기란 행복한 체하기 보다는 백 배나 더 쉬운 일이다. 안목이 있어 진짜 쾌락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재산이 소용이 없다. 자유로워 자신의 지배자가 되기만 하면 된다. 건강을 누리고 의식에 궁하지 않은 자라면, 억측에서 오는 행복을 자기 마음에서 뽑아내기만 하면 다 충분한 부자이다." p.508
"사랑에서는 독차지되지 않는 호의는 하나의 모욕이다. 민감한 남자라면 딴 사람 모두와 함께 애무를 받기 보다는 자기 혼자서 구박 받는 것이 백 배나 더 나을 것이며, 그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고약한 일은 특별대우를 받지 않는 일이다." p.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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