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세계는 '방대하다'는 말만으론 도저히 다 채집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깊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문학이라는 범주 아래 묶이기는 하다만은, 그것은 이 지구를 육지와 바다로 나누는 것만큼이나 큼지막한, 아주 크음지이마악한 구분과 다름없다. 의미는 있지만 시작에 지나지 않는 거친 것이다.


도스또예프스끼의 <죄와 벌>은 문학, 소설이다. 하지만 이 소설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자리에 서고나면 마음이 어려워진다. 식은땀이 난다. 내러티브의 깔끔한 전달보다는 등장인물의 심리묘사, 그들을 추동하는 관념의 구체화 과정이 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다. 그래서 소설을 읽을 때 기대하는 것들, 즉 작가가 깔아놓은 길 위를 걸어가며 그가 마련한 온갖 경치들을 룰루랄라 구경하는 것들을 생각하며 이 소설을 읽는 일은 실수이다. 분명 이 소설엔 주인공과 그의 적, 반려자, 조력자 등등이 나온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갈등이 있고 해결이 있다. 더할 나위 없는 소설의 모양을 갖추고는 있지만 여전히 <죄와 벌>은 여타 소설과는 한참 다르다. 물론 이런 류의 소설을 쓰는 작가가 도스또예프스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저런 문학상을 받는 소설가들의 작품을 보면 <죄와 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이 <죄와 벌>을 읽기 쉽게 만들어 주거나, 그 무거운 주제를 가벼이 해주지는 않는다. 여전히 <죄와 벌>은 문제적인 작품이다.


주인공 로지온 라스꼴리니꼬프는 자신의 사상과 주변환경의 기묘한 조화로 인해 한 고리대금업자 노파를 도끼로 살해하게 되고 그에 대한 죄의식과 비참한 세상사 속에 끝없는 괴로움을 겪는다. 이 복잡한 인물의 복잡한 속내와 발작적인 대사 및 행동을 보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을 유발한다. 그런데 그만한 정신병자는 이 소설에 한둘이 아니다. 소설의 분위기가 하도 정신사납다 보니, 소설 속에서 실제로 흐르는 시간보다 독자가 체감하는 시간이 훨씬 길게 느껴진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그 야단법석이 단 5일 동안 벌어졌다는 것에 우리가 괴리감을 느끼는 것과 꼭 같다. 하지만 이 소설은 친숙한 형식이 아닐 뿐이지, 독자에게 대단한 인내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이야기와 아이디어가 흥미롭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쉽게쉽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도스또예프스끼는 평생 도박중독에 시달렸지만 한편으론 기독교적 도덕률과 구원에 깊은 공감을 갖고 있는 작가였다. 그의 삶의 역설만큼이나 작품에서의 역설은 기이한 매력으로 독자를 빨아들인다. 과연 수많은 작가들이 그를 영감의 원천으로 삼을 만하다.


홍대화 옮김, 열린책들, 2009

Posted by MarlonPa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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