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리처

리뷰/영화 2015. 3. 15. 16:07

잭 리처는 미 육군 헌병대 출신으로서, 지금은 모든 과거와 정보를 말소한 채 미국 전역을 떠돌아다니는 방랑자이자 탐정입니다.

 

그는 정말로 쿨한 캐릭터입니다. 이렇게 작정하고 쿨한 캐릭터도 참으로 오랜만인데, 요즘은 영화에서도 멋있기는 한데 어딘가 한 구석이 모자르고 찌질하며 고뇌하는, 그야말로 인간적인 캐릭터들이 주인공을 맡기 때문입니다. 작년 큰 인기를 끌었던 어벤져스나 범죄와의 전쟁 같은 영화들을 보세요. 트렌디한 캐릭터 조형술은 그러한 영화들에 반영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입체적인 캐릭터란 거죠.

 

반면에 잭 리처는 촌스러울 정도로 쿨하고 낭만적인 캐릭터입니다. 쌍팔년도에나 어울릴 법한 주인공이라고요. 또 등장인물들이 물고 있는 대사들도 지나치게 멋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시작되는 사건인 무차별 살인은 루틴한 것임에도 영화 자체는 다른 세상 이야기 같습니다.

 

그럼에도 잭 리처는 재밌습니다. 아니, 그러므로 재밌다고 해야 할까요. 추리물의 재미는 이런 류의 뻔뻔함이 있어야 제맛 아니겠습니까. 잘생겼고, 머리 좋고, 쌈도 절라 잘하는 탐정이 사건을 척척 풀어나가는 쾌감은 썩 즐길 만한 것이거든요. 소설이 원작이라는데, 원작을 읽고 싶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톰 크루즈는 프로페셔널한 캐릭터를 소화하는 데 이미 도가 텄고, 특히 저는 그의 다람쥐 같은 액션을 참 좋아합니다.

 

또또, 영화에서 최종보스로 나오는 배우는 60년대 뉴저먼시네마의 대표기수인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입니다. 네, 전문 배우가 아니에요. 그래서 연기톤이 상당히 특이합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연기를 못하는 거고요. 아무렴 어떻습니까. 이제는 전설인 헤어조크가 최종보스로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보는 사람도 있을 텐데요.

 

그래서 결론은? 재밌습니다! 드라마 시리즈로 만들어져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전 드라마는 안 보지만요.


13.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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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arlonPa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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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도 어린이집> 특집은 <토토가>, <나홀로 집에>, <끝까지 간다>, <무도 큰잔치> 특집 같이 연말과 연초를  화려하게 장식한 특집들에 비하면 소품 같은 느낌을 준다. 대단한 반향을 불러 일으키지도 못 했다. 물론 무한도전이기에 특유의 성실한 웃음은 있었지만 일련의 특집들 사이에서 유난히 힘을 뺀 특집이라는 인상을 준다. 더군다나 다음 특집이 새로운 멤버를 뽑고 5대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자리여서 그 규모는 더 작아보이고, 앞으로도 인용될 것이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무도 어린이집>은 오히려 근 몇 달 동안의 특집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특집이었다. 이미 단물이 빠진 '육아'와 비슷한 아이템을 들고 나온 특집인데도 그렇다. 사실 <아빠 어디가>나 <슈퍼맨이 돌아왔다>와 같은 육아 예능은 육아를 내세우긴 하지만 스타들의 귀여운 자녀들이 가장 앞에 위치한다. 그런 아이들을 스타로 만들고 팬을 영입한다. 육아 역시 무시되지는 않는다. 연예인인 아버지의 직업 상 그간 힘들었던 자녀와의 시간들을 제공하는데, 이 과정을 지켜보는 게 또다른 즐거움이다.


하지만 <무도 어린이집>은 육아가 아닌 보육(시스템)을 아이템으로 삼았다. 육아와 보육은 사전적으로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지만, 용례적으로는 전자가 개인적이라면 후자는 공공적인 뉘앙스를 많이 풍긴다. 그래서 기존 육아 예능은 아빠-자녀가 그림을 만들어내지만 <무도 어린이집>에서는 보육교사-아동이 그림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꽤 큰 차이인데, 육아 예능에서는 아빠와 자녀 간의 교감에 포인트가 두어졌다면 <무도 어린이집>에서는 자신의 자녀를 교육 기관에 위탁하는 부모에게 책임을 다하는 것에 포인트가 두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아 예능에서 전국 단위로 여행을 다니고 단가가 더 비싼 그림을 뽑아내더라도,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작다. 이것은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그러하다는 것이다. 정말로 육아 예능에서 보여주는 이야기는 작은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그런 작은 이야기를 누릴 수 없었던 연예인과 자녀에게 그런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들의 나름 칭찬받을 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도 어린이집>은 무대 자체가 어린이집이라는 장소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규모와 단가 면에서는 앞선 프로그램들과 비교할 바가 못 되지만 훨씬 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번 특집은 아빠와 자녀가 어쩌다 한 번 가게 되는 '특별한 여행'을 담지 않고,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을 일상 속에서 어떻게 기르고 있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무한도전의 모든 멤버가 아버지가 되었음에도 굳이 다른 사람의 자녀들을 돌보는 것이다('그 녀석'의 공백으로 인해 무도 멤버 전원이 아버지가 된 것은 이번 기획에 있어서 참으로 미묘한 사실이다.). 육아 예능이 이벤트를 다룬다면, <무도 어린이집>은 시스템을 다룬다. 최근 어린이집 교사의 폭행 문제가 이번 특집을 낳았을 것이다. 시사 문제를 꼼꼼히 챙기는 무한도전이기에 이러한 접근이 낯설지 않다. 그러면서도 재미를 살뜰히 챙기는 그들의 공력에는 혀가 내둘러진다.


나는 이번 특집이 시사적이고 공익적(?)인 주제를 삼았다는 것만으로 인상적이라 평하지 않는다. 멤버 전원이 총각이었던 2006년부터 지금까지 10년 동안 무한도전을 지켜봐온 사람으로서, '어느새 이 프로그램이 이렇게 성숙해졌을까'를 문득 깨달은 것에도 있다. 우리는 모두 나이를 먹는다. 그리고 그것은 대개 한탄의 대상이 된다. 무한도전 역시 노쇠해져가고 있다. 아직은 건재하지만, 언젠가 무한도전에도 어쩔 수 없는 노쇠함과 끝은 올 것이다. 하지만 다른 프로그램들이 나이 먹는 것을 이겨낼 수 없어 폐지의 길을 걷는 데에 비해, 무한도전은 나이 먹음을 프로그램에 녹여가고 있다. 얼마 전 오스카 작품상 후보에 오른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보이후드>가 영화 평론가들에게 마르지 않는 칭찬을 받고 있다. 영화라는 매체에 좀처럼 담기 힘든 10년이라는 시간을 리얼타임으로 담아냈기 때문이다. 무한도전 역시 그에 못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여전히 까불 때에는 까불지만 또 어느 때에는 적잖이 무게감 있는 메시지를 담아낸다. 그 메시지를 담아내는 사람들은 다름아닌 이 프로그램과 함께 열 살의 나이를 먹어온 PD와 멤버들이다. 그들 역시 자기 자녀의 육아를 위탁하는 입장으로서, 누군가의 자녀를 돌보았다. 여기에 지난 10년간 쌓아온 무한도전만의 영상문법이 자연스레 어울린다.


10년의 경력을 매너리즘이 아닌 성숙함과 참신함으로 환원하는 데에는 짐작 못할 수고와 열정이 요구되었을 것이다. 나는 무한도전의 나이 먹는 법을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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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키

리뷰/영화 2015. 3. 14. 15:02

저는 복싱영화를 참 좋아합니다. 기본적으로 스포츠 영화가 주는 재미에 더해서, 복싱은 언더독의 이야기를 녹여내기에 가장 걸맞은 소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몸을 판다는 것에 강한 연민을 갖고 있죠. 두들겨 패며, 두들겨 맞아가며 상대를 쓰려뜨려야 하는 복싱의 처연함이란. 실제로 복싱은 상당한 엘리트 스포츠임에도, 우리가 복싱영화에서 마주하는 주인공들은 대개 갈 데까지 간 경우가 많습니다. 비교대상이 다소 엄하다고 느끼실지 모르겠으나, 저는 이것이 매춘과 비슷한 동기와 양상을 보인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정도로 복싱영화는 극적인 상황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주인공 록키는 지독한 자기연민에 빠져 있는 루저입니다. 4라운드 복서에 일수쟁이인 그는 서른이 넘었지만 여전히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인생입니다. 그의 애인인 애드리안은 사회성이 심각하게 부족해 보이며, 그의 오빠인 폴리는 다혈질에 알코올 중독이죠. 그러한 록키에게 현 헤비급 세계챔피언인 아폴로 크리드와의 15라운드 매치가 결정되었습니다. 3류 복서를 상대로 하는 4라운드 게임도 힘겹게 이기는 록키에게 이 게임의 결말이야 뻔한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뻔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영화이죠. 하지만 이 이야기는 단순히 영화니까 가능한 것 정도로 치부되기엔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이 영화의 대사를 보실까요. "if I can go that distance, you see, and that bell rings and I'm still standin', I'm gonna know for the first time in my life, see, that I weren't just another bum from the neighborhood."(내가 끝까지 갈 수 있다면, 그리고 벨이 울릴 때에도 내가 서있는다면, 그때 내 삶에서 처음으로 내가 양아치가 아님을 확인하게 될 거야.)

인간만큼 자기도취적이면서 또 자기연민적인 동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육중한 건축물과 온갖 기념물들을 봅시다. 인간이 일궈낸 모든 것을요. 그러한 것들을 볼 때면 저는 '우리는 정말 위대해'라며 도취감에 젖어있는 인간을 보게 됩니다. 동시에 스스로를 필요 이상으로 학대해가며 바보로 만들어가는 것도 인간이지요. 자책과 자학은 어느 정도 선까지는 반성을 하게 하고 보다 나은 모습으로 나아가게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주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한 번 스스로를 시시하게 여기기 시작한 사람은, 거기서 좀처럼 헤어나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록키 역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동네의 소녀에게 선의의 충고를 해주어도 결국 돌아오는 것은 조롱이었고, 본인도 자신이 그 정도의 대접밖에 받지 못하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입니다. 여기서의 문제는 록키가 정말로 그정도밖에 안 되는 3류 건달인가가 아니라, 그의 자아상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록키가 챔피언 아폴로 크리드와의 시합을 준비하는 일련의 장면들은 영화사(史)적으로는 스테디캠이라는 테크닉의 도입으로, 이제는 하나의 기념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저에게는, 록키의 훈련 과정 하나하나가 '나는 시시하지 않아!'라며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보입니다--물론 그러한 장면과 대사는 없습니다. 이 뼈 아프고 단내 나는 자기 극복의 과정 끝에 제가 좋아하는 위의 대사가 나옵니다. 비로소 자기의 시시하지 않음을 증명하기에 앞선 자만이 느낄 수 있는 떨림일 것입니다. 저 역시도 스스로를 지나치게 학대하는 편이기에 이 영화가 주는 감동은 남다른 것이었습니다. 조작적인 설정에 영화적인 결말이라고,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록키는 이 세상의 모든 시시한 이들을 위한 헌사입니다. 시시한 여러분, 여러분은 시시하지 않습니다.


14.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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