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넘게 언론인으로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해왔던 백지연이 그의 인생 최고의 인터뷰이로 꼽는 김용 세계은행 총재에 대한 <'무엇'이 되기 위해 살지 마라>는 좋은 삶과 성공에 대해 말하고 있다. 김용에 대한 위인전으로도 읽혀지는 이 책은, 저자의 뜨거운 상찬으로 꽉꽉 채워져 있는데 이건 뭐 거의 (김)용비어천가 수준이다. 김용에 대한 것이라면 뭐든지 경탄해 마지 않기 때문에 이 책이 과연 언론인이 쓴 게 맞나 싶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나면, 그것이 단지 낯 뜨거운 찬양이 아님을 알게 된다.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상투적인 교훈의 집합은 더욱 아니다. 김용이라는 인물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난다면 누구라도 그렇게 썼을 것이라는 생각에 닿게 한다. 이 책은 생애 최고의 인터뷰이이자 길이 남을 가르침을 선사한 위인(말 그대로다)에게 표하는 경의이다. 그리고 그 좋은 삶과 귀한 가르침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직업윤리의 산물이기도 하다.


김용은 1959년 한국 태생으로, 5세 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간 한국계 미국인이다. 브라운 대학 의대를 커쳐 하버드 의과대학 교수, WHO 에이즈 국장, 다트머스 대학 총재까지 삶 전반에 걸쳐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그리고 현재 세계은행의 총재를 역임하고 있다. 이 중 아이비리그(다트머스) 대학 총장과 세계은행 총재라는 직위는 각각 아시아계 최초이다. 화려한 경력의 엘리트라는 점이, 게다가 한국계라는 점이 백지연과 우리의 시선을 잡는다. 그러나 이 책은 그가 세계적인 리더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집필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부차적인 이유이다. 저자를 일깨운 김용의 한 마디─"나는 늘 무엇이 되는가(what to be)가 아닌, 무엇을 하는가(what to do)를 고민해왔습니다."─이것이 그 이유이다.


사실 이 책에는 새로운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다. 구태의연한 내용 투성이이다. 또 인터뷰 사이사이에 저자가 경험한 인문학 고전들을 인용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미 알고 있거나, 어디에선가 다들 한 번씩은 들었을 법한 가르침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이 오래된 교훈을 굳이 주섬주섬 모아서 엮어낸 까닭이 무엇인가. 말할 나위 없이, 이 책이 조명하는 것은 가르침이 아니라 가르치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김용이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이 책은 기획되었다. 같은 이야기더라도 다른 사람이 백지연 앞에서 했더라면 그저 좋은 말에 그쳤을 것이고 책으로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김용이 그동안 자리해왔고 자리하고 있는 빛나는 위치가 우리를 감동시키는 게 아니다.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지금에도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가 그러는 것이다.


그는 한 평생 빈곤과 질병이라는, 인류의 지속적이고도 가장 거대한 적과 싸우는 일에 전념해왔다. 의대생일 때에도, 의과대학의 교수일 때에도, 보건기구의 국장일 때에도, 대학의 총장일 때에도, 그리고 지금도 한결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다만 그의 영향력과 문제 해결의 스케일만 커져왔을 따름이다. 세계은행은 세계의 절대빈곤과 저개발 국가의 안정적인 개발을 원조하는 국제 기구이다. 김용은 매일 아침마다 현관 바닥에 '우리는 가난이 없는 세상을 꿈꾼다'라는 슬로건이 적힌 직장으로 출근한다는 자긍심이 있다. 세계은행의 수장으로서, 세계에 도처한 문제를 헤쳐 나가도록 그에게 주어진 돈이 이제는 연간 600억 달러에 이른다. 그는 지금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무언가를 도모하고 있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정도의 스케일이 아니더라도, 무언가 도전을 하고 더 나음을 도모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냉소주의의 표적이 되기 쉽다. 그렇게 애를 쓴다고 해서, 너 혼자 열심을 낸다고, 아무리 뜻이 좋은들 가난이나 다툼이, 질병이 없어지겠느냐는 차가운 반응 말이다. 이해할 만 하다. 문득문득 '이 세상이 이전에 비해 더 나아지고 있는 것일까'하는 의문에 선뜻 그렇다고 말하기 힘들 때가 많기 때문이다. 포기하면 편한 일들이 얼마나 많으며, 실제로 얼마나 많은 실패와 좌절이 목격되는지. 하지만 김용은 냉소주의에 맞서 긍정을 품는 것을 '도덕적 선택'이라 하였다. 냉소주의는 겁쟁이들의 피난처라는 것이다. 안토니오 그람시처럼 무관심을 증오하며 '이성의 비관주의'와 '의지의 낙관주의'로 포기하지 않는 것이, 그에게는 도덕과 양심의 요청이다.


긍정을 포기하고 도전을 거두는 것이 비도덕적이라는 비난이 옳지 못할지는 몰라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덜어내기 위해 두 팔 걷어 달려드는 용기와 긍정은 분명히 도덕적인 것 같다. 냉소주의에 대한 그의 비판을 대하면서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냉소주의는 겁쟁이들의 피난처라... 나는 왜 그토록 말뿐이었고, 행동이 부족했고, 포기가 빨랐을까. 왜 좋은 일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격려도 부족했고 함께 하지 않았을까. 왜 나는 그리도 냉소적이었을까. 왜 나는... 이렇게 비겁할까. 행동하는 지식인 앞에서, 지식도 부족하고 행동은 더더욱 부족한 나는 부끄러웠다.


나도 그렇지만 많이들 무엇이 되려는 노력은 저마다 열심히 한다. 어느 직업, 어느 직책 같은 것들 말이다. 대개는 그 목적이 부와 명예를 손쉽게 얻는 것이거나 좀 더 성숙한 경우에는 자아실현 따위의 것들을 목표로 삼기도 한다. 그러나 김용은 언제나 무엇을 할지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그것이 우리가 회피해서는 안 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가 반성을 한다. 너무 뻔하고 식상한 교훈인데, 울림이 굉장하다. <울지마 톤즈>의 이태석 신부님 이후로 가장 큰 여운이었다. 역시 세상은 실천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라야 바뀌는 것 같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김용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의 생각과 그가 하는 일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좋은 일이라면 그냥 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 정말로 내가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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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arlonPa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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