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는 끔찍한 무료함과 무기력함을 동시에 느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해낼 만한 힘이 도무지 없다고 느껴지는 날이었다. 그래서 나는 무라마키 하루키를 읽었다. 내가 가진 그의 책 중에선 유일하게 안 읽은 채로 남겨 두었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하루키의 소설은 묘하게 위로를 주는 구석이 있다. 그의 스타일적인 성취와 광활한 문학적 배경과는 상관없는 그런 것인데,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나는 그 자리에서 너무너무 울고 싶었다. 기독교 신앙이 없었더라면 나는 문학에서 구원을 찾았겠구나, 싶었던 날이었다.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 최고작으로 꼽히는 작품들에 비하면 무게감이 다소 떨어진다고 평가를 받는 것 같고, 나도 그러한 평에 동의한다. 하지만 예술을 접할 때에는 그것의 객관적인 위치보다 주관적인 체험이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 이 길고 긴 제목을 가진 소설에서 나는 하루키의 어떤 작품보다도 더 심심한 위로를 받았다.


제목은 길지만, 이에 대한 글을 길게 쓸 힘도 생각도 없다. 내용 요약도 안 할 거고. 그래서 아예 이 책을 두고 글을 쓰지 말까 하다가, 이 책을 읽고서 나에게 일어난 일을 구차하게나마 적어두는 것은, 어떻게든 해야만 할 것 같아서 이렇게 쓰나 마나 한 글을 썼다.

Posted by MarlonPa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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