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이야기 2
1. 닫혀 있는 변기 뚜껑은 무섭다. 그냥 닫혀 있기만 하는 건데도, 가슴을 철렁하게 한다. 조심스럽게 변기뚜껑을 들어 본다. 아, 다행히 맑은 물이 고여 있다. 앞선 사람의 고약한 뒷처리에 경험하지 않아도 되었을 긴장을 맛 보았다. 물론 더 고약한 뒷처리를 남기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하긴 하다. 그래도 닫혀 있는 변기 뚜껑은 다음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처사에서 나온다. 제발 변기 뚜껑 좀 닫고 가지 말아주세요.
2. 한껏 밀려오는,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밀려나가려는 녀석들을 온 힘 다해 부여잡고 간신히 변기에 앉는다. 오늘도 일촉즉발의 위기였어. 참사를 면했다는 안도감과 통쾌하게 비워지는 시원함도 잠시, 휴지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쩐다, 여기엔 나밖에 없고 오늘은 양말도 안 신었다. 급한 불을 끄느라 여기까진 고려하지 못 했는데. 아직 닦아내지 못 해 출구 근처에 서성이고 있는 남은 녀석들도 점점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다. 이 기분은 앞선 쾌감을 허망케 하고 있다. 조치가 필요하다.
옳거니, 쓰레기통 맨 위에 소복히 얹어져 있는 휴지 뭉치가 있구나. 앞선 사람은 휴지 아까운 줄 모르고 손에 둘둘 감고서 정작 대부분의 휴지엔 녀석들을 묻히지도 않은 채 버리는 사람이었나 보다. 어딜 가나 그런 사람은 꼭 있다니깐. 게다가 녀석들을 닦아낼 때에, 처음의 왕건이만 닦아내고 나면 나머지는 잔챙이들밖에 없어서 나중에 버려지는 휴지일수록 적은 부분만 오염되는 것이다. 하물며 이렇게 헤픈 사람의 마지막 휴지란, 거진 새거라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나의 과학적인 판단에 경의를.
자, 얼른 시작하자. 우선 오염된 부분을 조심스레 제거한다. 자칫하다간 휘적휘적 오염부위만 늘어난다. 옳지. 이젠 재활용되는 휴지를 조금씩 조금씩 끊어내어 사용한다. 처음에는 큰맘 먹고 세 칸을 뜯는다. 처음을 아끼면 왕건이가 삐져나오거나 닦아내다가 손가락에 스칠 위험이 있다. 그 다음부터는 두 칸 정도로 충분하다.
됐다, 오늘도 이렇게 위기를 넘겼다. 고마워요, 이름 모를 똥싼 이여. 당신의 낭비벽이 나를 구제해 주었어요.
3. 앗, 오늘 점심은 카레잖아.